근 3년간의 치아교정을 끝내고 기쁜 마음과 귀찮은 마음으로 가철식 유지장치를 잘 착용하고 있는 요즘이다.
치아교정을 했던 기간만큼 빼고 끼고 하는 가철식 유지장치는 필수인데 깨끗하게 닦아줘야 하기도 하고, 착용한 상태에서는 맹물만 마실 수 있다. 아무튼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이게 아니고, 치아교정을 하면서 나는 상악 왼쪽 사랑니는 발치를 했고, 오른쪽 사랑니는 끄집어 땡겨서 사용 중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랑니 앞에 어금니를 발치하고 사랑니를 그 자리로 가져온 격)
그런데 문제는 하악에 있는 두개의 사랑니. 치아교정 원장님께서 X-ray 사진을 보시더니 하악 왼쪽 사랑니는 가로로 누워있어서 음식물도 잘 낄 거고 썩다 보면 그 앞에 있는 멀쩡한 치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빨리 빼라고 하셨다. 그래서 다니던 동네 치과에 가게 됐었다.
1. 사랑니라고해서 모든 치과 의사가 발치할 수 있는 건 아니더라
내가 다니는 동네 치과는 할아버지께서 하시는 곳인데 치의학 박사님이시던가... 그렇다. 정말로 상악 사랑니 발치할 때 여기에서 했는데 뺀 지도 모르게 정말로 10초 만에 뿅~! 하고 뽑아내셔서 사랑니 그거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했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갔더니
원장님 曰: " 자, 여기 X-ray를 보면 이건데... 지금 치아 뿌리가 신경이랑 너무 가깝게 있어 그치?? 그래서 이건 잘못 뽑다
가는 신경을 건드리거나 그러면 안좋을 수가 있어서 내가 소견서 써줄 테니까 대학병원에 가서 뽑아야 할 거 같아~"
이게 무슨 말인가... 사랑니 하나 뽑는데 대학병원까지 가야한단 말인가!!! 원장님께서 뽑을 수 없는 치아도 있단 말인가요!! 흐흑 왜죠... 일단 그렇게 소견서를 받긴 했지만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는 한창 대학병원이 난리이던 터라... 예약을 한다고 해도 언제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게다가 대학병원에서 사랑니 발치하면 금액이 엄청 비싸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가기가 망설여졌다.
그때 울 언니에게 말했더니 사랑니를 대학병원에서 꼭 안 뽑아도 되고 잘 찾아보면 사랑니만 전문적으로 뽑는 병원도 많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게 있단 말인가!!! 바로 서치를 했더니 대학병원에서 치과교수를 하던 분들이 사랑니만 전문적으로 발치하는 병원을 개원한 곳이 꽤 많았다. (게다가 오로지 사랑니만 뽑는 병원이다!)
나는 집에서 그나마 가기 좋은 곳으로 검색을 했고 리뷰가 좋은 곳을 예약하고 방문하기로 했다.
2. 발치 전 최후의 만찬
사랑니 중에서도 매복사랑니는 발치하기에 정말로 까다롭다. 특히 나처럼 가로로 누워있거나 정말로 겁나 밑에 매복해있거나 신경과 너무 가까이 있는 사랑니는 일반 치과에서는 발치하는 게 어려운가 보다. 그래서 구강악안면외과 전문의에게 하라고 했다. 좋다. 내가 찾은 곳도 그런 곳이니 잘하겠지.
나는 별로 떨리지 않았지만 엄마가 걱정된다면서 병원에 같이 가주었다. 진료 예약 전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일단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한동안 맛있는 거 먹지도 못할테니 최후의 만찬으로 겁나 많이 먹었다.
지난번 부평에서도 먹어봤던 '경양카츠'
구월점은 처음 가봤는데 점심시간이 좀 지나서 그런지 사람은 없었다. 가게 바닥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끈적끈적한게 신발이 쩍쩍 달라붙었다.
엄마는 안심+등심 섞인 스페셜인가 특돈까스인가를 주문했고, 나는 치즈돈까스로 주문했다.
- 메추리알 후라이 밥
- 국수
- 양배추 샐러드
- 백김치
- 부추무침
- 고추냉이
- 새우젓
- 소금
- 돈까스 소스
- 갈치속젓
- 레몬 (돈까스위에 뿌리기)
이렇게 알찬 구성이 나왔지만 나는 국수도 밥도 거의 먹지 않고 오로지 돈까스만 먹었다.
내 사랑 고로켓을 주문했다.
원래 3개가 나오는데 엄마랑 내가 먹는 걸로 싸울까 봐 저렇게 잘라준 걸까. 아니면 원래 한 개는 저렇게 반을 내주는 걸까.
중요하진 않지만 감자가 아니라 안에 고구마다. 그래서 한입 베어먹으면 고로켓이 흐물렁 거리면서 녹아내린다(?)
난... 감자 고로켓이 좋단 말이야!!!!!!!!!!!! (메뉴에 떡하니 고구마 고로켓이라고 적혀있음)
얼마나 빨리 먹고 싶었던지 손가락까지 찍혔다.
고기는 연했고 치즈도 쭉쭉 잘 늘어났다. 맛있게 만찬을 즐겼다.
3. 드디어 발치 시작
밥먹고, 근처 카페에서 커피까지 야무지게 먹어준 후 치과에 올라가서 양치했다. 꼼꼼히 구석구석 양치를 하는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 화장이 다 떠서 너무 못생겼다. 이런... 뭐 어쩔 수 없다. 원래 이렇게 생긴 거 일단 들어간다.
우선 X-ray 를 찍었다. 그리고 곧바로 CT까지 찍었다. 매복사랑니의 경우 CT까지 찍어야 하는 건지 그냥 별다른 설명도 없이 두 개를 찍었다.
찍고 나와서 공포의 치과 의자에 앉아 치위생사 선생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여기여기에 신경이 있고 너무 가깝다. 그리고 만약 신경을 건드리거나 그러면 간혹 안면마비가 오기도 하는데 6개월 안에는 다 풀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시키는 듯 걱정을 끼쳤다. 내가 너무 덜덜덜 떠니까 춘식이 인형을 주셨다. (리뉴얼한 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은 병원이라 그런지 인형도 깨끗했다.)
진료를 기다리는 동안 내 CT 사진도 찍어봤다.
3년동안의 치아교정 효과를 이렇게 톡톡히 보는구나. 히히 이쁘다. (?????)
15:30분 예약이었는데 예약 시간은 별 의미가 없었다. 왼쪽 자리에서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께서 꽤 큰 수술을 하셔서 시간이 오래 걸렸다. 너무 힘드셨을 것 같았다. 그리고 할머니 진료가 끝나자 바로 내 오른쪽에 계신 아저씨 진료를 보셨고 그다음에 내 차례가 됐다.
원장님은 촬영 사진을 보면서 내 사랑니는 상당히 깊다고 하셨다.
그리고 발치 후 2주동안은 정말로 조심해야 한다고 하셨다. 특히 입을 크게 벌리면 안 된다고 하셨다. 다리에 상처가 나도 무릎을 심하게 구부리거나 하면 상처가 확 벌어지듯이 그러면 상처가 낫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입을 크게 벌리지 말라고 하셨다.
마취는 땡땡하게 잘 됐고,
입을 벌리라는 말씀에 입을 벌렸는데
원장님 曰: " 어...??? 입이 이거밖에 안 벌어져요? 더 벌려야하는데?? 좀만 더 아~~~"
나 曰 : ' ....???????? '
입을 있는대로 벌렸다. 하지만 한계였다. 으윽 너무 아팠다.
턱은 조금 아플지언정 작게 벌렸다가 원장님이 잘 안 보여서 내 입안을 조사 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에 크게 벌렸다. 품에 안은 춘식이 얼굴이 점점 구겨지기 시작했다.
4. 10분만에 발치 끝 (혐오 사진 주의)
열심히 자르고 지렛대로 으라차차 힘껏 눌러서 뽑아낸 내 사랑니...
집에 가져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안된다고 했다. (......) 대신 사진은 찍을 수 있다고 하셔서 얼른 찍었다. 뭔가 살점도 조금 붙어 있는 거 같아서 일단 너무 혐오스러워서 모자이크를 살짝 넣었다. (안녕 사랑니 잘가라)
발치는 마취 덕분인지 생각보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안 아파야 정상이... 겠죠) 오랜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내 진료가 끝난 원장님은 얼른 다른 환자에게 가셨다.
5. 아프지만 배가 고프다
2시간 동안 정말 있는 힘껏 거즈를 물었다. 턱이 부서져라 물었다.
나는 발치도 싫지만 그것보다 더 싫은 건 지혈을 위해서 거즈를 무는 게 제일 싫다. 거즈 사이로 스멀스멀 흐르는 피는 계속 삼켜야 하고 그 피를 삼키다 보면 토할 거 같고(아흐 비려...) 턱과 광대뼈는 진짜 부서질 것 같고. 진짜 이러다가 잇몸이 와장창 하면서 부서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이번에는 신경 가까이에 있는 치아를 발치했기에 출혈이 심할 거라고 하셔서 지혈솜을 안에 넣고 같이 꿰매어주셨다. (비급여 2만 원) 선택 사항일 수도 있겠지만 진짜로 이걸 넣어서 그런지 2시간? 3시간 만에 피가 딱! 멈췄다. 너무 신기하고 좋았다. 돈보다 피가 흐르는 게 더 싫었다. 선택사항이라면 난 선택하는 쪽이었을 거다.
집에 와서 2시간이 지나서 거즈를 교체했다. 피가 펑펑펑 흐르지는 않았지만 여분으로 주신 거즈로 1시간 정도 더 물고 있었다. 하지만 3시간이 지나도 마취는 풀리지 않았다.
거의 5시간 정도가 지나자 마취가 서서히 풀리고 턱과 입의 감각이 돌아와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하지만 뭘 먹을 수가 없으니 편의점에 가서 죽을 사 왔다. 오뚜기 호박죽은 단호박죽이라서 강낭콩이 들어있지 않았지만 진짜 겁나 달았다. 게다가 이거 하나에 4500원이라니!!!! 죽 진짜 비싸졌구나... 물가 뭐 이래...
죽도 대충 전자레인지에 돌려서 거의 식은 상태로 오른쪽으로 흘리듯 집어넣고 삼켰다.
양치는 하지 말라고 해서 물만 좀 삼키고 (가글도 안됨) 잤다.
※ 발치 당일 주의 사항※
- 2시간 이상 꽉 거즈 물고 있기
- 침과 피는 무조건 삼키기
- 식사는 지혈이 되고 마취가 풀리면 먹기
- 양치하지 말기
- 가글 안됨
- 빨대 사용 안됨
- 뜨거운 음식 안됨
- 격한 운동 안됨
- 샤워 안됨
- 코도 좀 살살 풀어주기
6. 아쉬웠던 점
해당 병원의 아쉬웠던 점을 적어보자면 이러하다.
1) 가글 마취 안내가 없었다
발치할 때 마취를 보통 잇몸이나 혀에 주사를 넣게 되는데 이게 상당히 아프다. 그래서 요즘은 그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 가글 마취를 먼저 한 후에 얼얼한 상태에서 주사 마취를 하는 게 보통인데 (안 하는 곳도 물론 있다) 여기 병원이 가글 마취를 한다고 해서 안심하고 갔었다. 그런데 가글 마취 안내가 없었다. 물론 나도 까먹고 있었고.
그러다가 내 옆으로 지나가던 치위생사가 "가글... 하셨어요?"라고 물었고 나는 아뇨??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말하는 와중에 원장님이 오셔서 그냥 입 벌리라고 하고 잇몸에 마취 주사를 놓은 거였다.
뭐, 내가 안 물어본 것도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병원에서 먼저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와서 진짜 개아팠다. 시부럴......
2) 봉합 실이 왜 앞에다가 묶어놓은 거죠?
집에 와서 거울을 보고 나서 알았다. 발치 후 봉합을 할 때 보통 그 자리에다가 실로 묶지 않나??
내가 거울을 봤는데 굉장히 앞 쪽 하악 어금니 사이에 끼워져서 묶여있었다. 이게 풀릴까 봐 묶어서 앞에 어금니에 걸어서 묶어 둔 걸까?? 나는 매듭이 빠진 줄 알고 빼려다가 뭔가 안 빠져서 놔뒀는데 이거 왜 이렇게 했는지 설명이라도 좀...
3) 카운터 직원의 대답
발치 후 다음 날부터 해당 부위의 귀가 아프다.
가만히 있을 때는 아프지 않은데 음식을 씹으면 귓구멍 안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거 같다. 마치 고막이 뽑히는 거 같은 고통이다. (사실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난생처음 느껴보는 느낌)
좀 이상하고 걱정되는 마음에 폭풍 검색을 했는데 이게 치료를 하면서 입을 크게 벌리다 보면 턱에 무리를 줄 수 있고 그로 인해서 통증이 귀에 나타날 수 있다고 하더라. 물론 담당 원장한테서 그런 말을 들은 건 아니라 인터넷상의 의사들이 써놓은 글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그들이 그렇게 써 놨으니 그럴 수도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진료받은 병원에 전화를 했다.
나 曰: " 저, 사랑니 발치 후 해당 부위 쪽의 귀가 아픈데요 그럴 수가 있나요?"
카운터 직원 曰: " 사랑니 발치랑 귀는 상관이 없어요~~ 귀 쪽 진료 따로 받아보세요~~~" (이 말투가 굉장히 별로였음)
나 曰: " 아니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그럴 수 있다고 나오는데 아니라고 할 순 없잖아요. 원장님께 여쭤봐 주시면 안돼요?"
카운터 직원 曰: " (하하 웃으며) 원장님도 똑같이 말씀하실 거예요~"
더 이상 이야기하기 싫어서 끊었고 여기에서 실밥 뽑으려고 했으나 할아버지 치과에 가서 뽑아야겠다.
나는 병원에 따지려는 것도 아니고 책임을 물으려는 것도 아니고 이런 경우가 있는 건지 물어본 거고 있다면 얼마나 좀 기다리면 되는지를 알고 싶었던 건데 왜 본인이 의사도 아니면서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발치한 지 6일째 되는 지금.
여전히 귀는 아프다. 많은 블로그를 돌아다니며 귀가 아팠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떤 분은 2주까지도 아팠다고 하셨다. 일단 천천히 사라지는 거 같으니 한 달은 기다려봐야 할 거 같다. 그래도 아프면 병원에 가서 조치를 취해야 할 거 같다. 후.....
그리고 괜찮아지면 나머지 오른쪽 하악 사랑니도 발치를 하든지 해야지.
아, 그리고 사랑니 발치 비용은 X-ray, CT, 지혈솜까지 다 해서 79,100원이 나왔다. (지혈솜 20000원)
생각보다는 많이 안나온 것 같아서 괜찮았지만 귀가 아파서 지금 만사가 다 짜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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